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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데브

멋진 인생과 더불어 2004. 5. 24. 11:19
 

얼마 전 금융기관에 근무하는 장부장과 골프를 했습니다. 매너가 좋을 뿐더러 매사에 똑 부러지고 실력이 있는 그를 개인적으로 무척 좋아합니다. 마음이 통하는 사이 이다 보니 가끔 식사도 하고, 골프도 나가는데 한동안 업무에 바빠 서로 연락이 없었습니다.. 날도 좋아지고 했으니 오랜 만에 골프나 나가자고 약속을 잡았습니다.(개인적으로 겨울에 골프를 치는 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잔디가 파릇파릇 해야 골프 할 맛이 난다고 생각하거든요 한국은 눈이 발목이상 쌓여도 골프를 하지만 미국의 경우 사철 따뜻한 곳을 제외하고는 골프장을 폐장합니다, 캐나다는 전지역이 그렇지요) 장부장과 운동을 할 때면 언제나 그런 편이지만 이날 역시 맴버도 좋고 날씨도 화창하여 무척이나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운동을 마치고 돌아오는 차에서 얼마 전 유행했던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가 화제에 올랐습니다. 이 영화를 감독한 ‘유하’씨가 장부장의 절친한 친구이며 당신이 고등학교에 재학시절 실제로 일어났던 일들을 패러디하여 영화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영화에 나오는 주인공 현수(권상우분), 우식(이정진분)은 한 학교에 다녔던 동기였으며 우진(한가인분)은 자신이 다녔던 학교의 바로 옆 여학교에 다녔다고 합니다. 실제 주인공들이 나중에 어떻게 되었나 소상히 설명도 해 주었습니다. 따져보니 필자가 학교를 다녔던 시절보다 꼭 3년 후의 이야기였습니다.

 

아는 대로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의 시대적 배경은 유신정권시절 입니다. 학교 규율을 빌미로 군화 발로 아이들의 촛대 뼈를 까는(?) 것이 가끔은 당연하게 여겨지던 시절. 교련시간에는 총검술과 수류탄 던지기를 했으며 가끔은 선착순 집합도 있던 시절이었습니다. 검은색 교복과 삐딱하게 눌러쓴 모자, 가끔은 살벌해지기도 하는 교실 풍경마저도 이소룡의 절권도, 진추하의 노래와 더불어 좋은 추억거리를 제공해 주었지요. 등교시간이면 선도 부원 들이 교련복 차림으로 정문에 도열하여 지각하는 학생, 복장이 불량한 학생을 찾아내  기압을 주기도 했습니다.

 

영화의 내용이 필자가 고등학교를 다닌 시절의 내용인지라 영화를 이해하는데 어려움은 전혀 없었습니다. 하지만 중학교에 다니는 딸과 함께 영화를 본 장부장은 딸이 영화의 내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불평을 했다고 합니다. 10년이면 강산이 바뀐다고 하는데 그간 강산이 세 번이나 바뀌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 이겠지요.

 

화제를 바꾸어 고등학교 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잠시 할 까 합니다. 세상에 불가사이 한 일이 적지 않지만 그 중에서도 이해할 수 없는 일 가운데 하나는 ‘짧은 고등학교 시절 3년이 사람들의 마음 속에 어쩌면 그리도 크고, 명확하게 자리 잡아 평생동안 그 추억을 잊을 수 없을까’ 하는 것입니다. 인생 전체를 놓고 볼 때 3년이란 세월은 그리 긴 세월 은 아닙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고등학교 3년 시절이 우리 인생전체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합니다. 이 시절을 어떻게 보냈는가, 이 시절에 어떤 선택을 했는가에 따라 평생의 직업이 결정되고, 삶이 순조로울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또한 이 때 만난 친구가 평생 친구가 됩니다. 대학시절, 사회에 진출하여서 적지 않은 친구를 만나게 되지만 고등학교 때 친구 만큼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진정한 친구도 없다고 생각됩니다. 불알(?)친구라고 하는 고향친구도 고등학교 때 친구만 못할 때가 있는 것은 결코 나만의 경우가 아닐 것입니다.

 

필자가 고등학교에 다녔던 73년부터 76년 2월까지의 3년 동안도 참으로 많은 추억이 있었습니다. 축구응원을 하다 심판의 오심에 항의하여 운동장 아래로 우르르 몰려 내려가 축구 골대를 뽑아버린 일, 시민운동장에서 시내까지 항의데모를 하던 일, 수업을 밥 먹듯이 빼먹고 축구 응원을 갔던 일(하라는 공부는 하지 않고 무작정 상경하여 서울운동장에서 목이 터져라 축구팀을 응원을 하던 일도 있었음), 여름이면 의자도 없는 강당에 양반다리로 앉아 3일 동안 수양회를 하던 일(안병욱, 한승호, 정진경씨가 강사로 초빙 되었음), 매일 같이 오십 계단을 오르내리던 일, 각종 서클 활동에 참여하여 활동하던 일 등 추억을 하나하나 열거하기가 어려울 정도입니다. 이 많은 추억-나쁜 추억도 없진 않지만 지금은 이미 좋은 추억으로 모두 바뀌어 버린-은 평생 나의 삶 가운데 고향 같은 그리움으로 남아있지요. 때론 이 추억을 추억하는 일 만으로도 충분한 삶의 기쁨이요, 살아갈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 시절 주역이었던 계성 63회 동기들이 지난 5월 5일 계룡산 자락 빈계산에 모였습니다. 3년 전 있었던 ‘홈컴잉데이’(home coming day, 졸업 후 25년이 되는 해 졸업생들이 모교를 방문하여 선생님, 후배들과 만남의 시간을 가지는) 행사 후 전국에 흩어진 친구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만남의 기회를 가지자고 회장단이 기획한 의미 있는 행사였지요. 서울 대전 대구 구미 포항 울산 부산 전국각지에 흩어진 동기생들이 버스를 대절하거나 각자의 차에 분승하여 계룡산 수통골로 모였습니다. 졸업한지 30년 후 서로 다른 삶의 현장에서 열심히 살아온 전국 각지의 친구들이 130명이나 모였으니 그 감회와 회포를 어떻게 말 또는 글로 다 표현하겠습니까.

 

가끔 만나는 친구도 있었지만 졸업 후 처음 만난 친구도 있었습니다. 까까머리 고등학생 시절 친구들이 이제는 나이가 들어 자녀가(2세가) 고등학생, 또는 대학생이 되어버렸습니다. 가볍게 산을 한바퀴 돌며 고등학교 시절의 마음으로 돌아가 농담도 주고 받고, 그간 살아온 이야기, 앞으로 살아갈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산행길을 돌아 내려오는 길목에서 만난 수통골 계곡은 절경이었습니다. 계곡이 깊고 넓어(아랫쪽 계곡) 설악산의 한 계곡에 와있는 것 같기도 하고 외국의 한 관광지에 와있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갔던 수학여행을 잠시 추억해 보기도 했습니다. 그 시절 함께 했던 친구들과 였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지요.

 

11시부터 1시까지 산행을 마치고 계룡대 구룡관 랑데브(이름이 랑데뷰도 아니고 랑데브였어요)에서 약 3시간 30분가량의 여흥시간이 있었습니다. 모교의 음악 선생님으로 20년 이상 재직하고 있는 정원각의 사회로(이 친구 얼마나 코믹하게 사회를 잘 하는지 배꼽 빠지지 않을 정도로 웃었습니다) 술잔을 나누며 노래도 하고, 오랜만에 서로 인사를 나누는 의미 있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5시쯤 여흥시간을 끝내었는데 친구들이 버스에 오르라고 해도 도무지 오를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아쉬웠던 것이지요.

 

2004년 5월 5일은 세상 걱정 모두 떨쳐 버리고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좋은 친구들과 함께 한 멋진 하루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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