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시

씨부럴 세상

멋진 인생과 더불어 2004. 6. 21. 12:03
 

<씨부럴 세상>

 

한때는 장래가 촉망되는 사원이었어.

남에게 뒤지지 않는 실력도 있었고

큰 성과로 사람들을 놀라게도 했지.

하지만 비굴하게 손을 비비거나 옳지 않다고

생각되는 일은 하지 않았어.

사람들은 자기 일도 제대로 못하면서 남 이야기 하기를

좋아하지. 남이 잘되면 시기하고 남이 잘될까 봐 안달이 났지.

경쟁자인 듯 싶으면 잡아먹으려 했

없는 이야기 만들어 투서질도 하고

입에 담을 수 없는 험담도 하고.

그래 놓고 막상 마주치면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밥 먹으러 가자고, 아이들 잘 크느냐고 마음에도 없는 소리

마구 해대었지.

이래저래 이쪽에서 저쪽에서 후배들이 승진하고 진급하여

이사님 삼사님 말들이 들려왔지.

듣지 않으려고 그러지 않으려고

애쓰고 애써도 자꾸만 배알이 꼴렸어.

젠장 어떻게 된 세상인지

능력 있고 실력 있고 바르게 살려는 사람은 물먹게 만들고,

깨끗하고 정직한 사람은 뒷전에 앉히고,

교묘하게 정치질 하고 처세에나 신경 쓰는 치졸한 이들은

출세가도를 멈추지 못하는지.

그러기에 세상은 정글이라 했나? 보이지 않는 정글.

먹을 것이 있으면 보이지 않게 물어뜯고 심지어 죽여버리기까지 하는.

씨부럴 세상

세상공평하지 않은 건 만인이 아는 일.

그래도 길지 않은 한평생 착하고 바르게 살면

죽는 날 편하게 죽기라도 하겠지.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 볼 줄 아는 눈 생기겠지.

 

<2004/6/21이택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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