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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작물이 있는 길

멋진 인생과 더불어 2004. 8. 13. 12:09

     영천시립도서관 뒤쪽으로 주택가 있다. 이 주택가 뒤쪽으로 약 오백 미터를 올라가면 자그마한 산이 나온다. 이 동산에는 산책로가 잘 조성되어있다. 인공으로 조성된 곳이라기 보다는 사람들이 많이 다녀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길이다.

 

     이 길을 따라 계속 가다보면 좁은 길 옆에 농사짓는 밭들이 여럿보인다. 콩이랑 파랑, 고구마 등이 심겨져있다. 잡풀과 작물이 뒤엉켜 엉망인 밭이 있는가 하면 잡풀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메끈한 밭도 있다. 풀들로 뒤덮인 밭의 작물은 외소하고 보잘 것 없지만 풀 한포기 없는 밭의 작물은 윤기가 흐르고 힘이 넘친다. 가을에 수확 또한 많으리라. 작물도어떤 주인으로 만나느냐에 따라 운명이 달라진다. 게으른 주인을 만나면 비실비실 힘이없고, 부지런한 주인을 만나면 윤이 자르르 흐르게 튼실하다.

 

   산책로는 끊이지 않는 작은 능선을 따라 계속된다. 대도시의 공원이나 산책로 만큼 사람이 많지 않아 여유롭게 산책을 즐길 수 있다. 올망졸망 자라는 밭작물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나지막한 산길이 끊이지 않고 이어져 있어 또 다른 맛이 있다.

 

   동네 아주머니들이 짝을 지어 산에서 내려온다. 아침 8시가 가까와오니 산책을 마치고 내려오는 길인가 보다. 군인으로 보이는 아저씨는 빨간 모자에 조깅옷을 입고 달음박질 친다. 매일 운동을 열심히 하는 사람으로 보인다. 젊은 백인 여자가 말총머리를 휘날리며 달음질 친다. 스쳐 지나가며 '안녕하십니까?'하고 꾸벅 인사를 한다. '굿모닝'이란 소리가 목청을 지나 세상밖으로 나오려 하다 '안녕하십니까?'로 바뀌어 나왔다. '굿모닝'도 별 상관은 없는데... 젊은 아낙 서너명이 몸빼바지에 모자를 쓰고 수건으로 얼굴을 가린채 잰 걸음으로 지나간다. 밭으로 일 나가는 모습이다. 남편 출근한 후 밭고랑이라도 갈아줄까 하고 찾아가는 길인지도 모르겠다. 이들의 모습이 참으로 건강해 보인다. 도시의 경우 남편 출근한 후 할일이 없어 빈둥거리기도 하고 또 춤바람이 나 춤추러 다니고, 캬바레에서 만난 사람끼리 여관을 드나들기도 한다.

 

  소나무가 숲 아래 재게 날아다니는 십자매떼가 보인다. 한 놈이 커다란 솔방울 사이로 들어가 먹이를 찾는지 열심히 쪼아댄다. 회색깃털이 매끈하고 눈망울은 초롱초롱하다. 이놈들은 가지에서 가지 사이로 마치 벌떼처럼 날아다닌다. 몸집이 십자매보다 세배나 되는 듯한 산새 한마리가 후루룩 저편으로 날아간다. 놈들의 등쌀에 못이긴 척 자리를 옮기는 것이다.   

   <2004/8/13 이택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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