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ition

영천

멋진 인생과 더불어 2004. 8. 13. 14:56

  영천은 해발 1124m의 보현산이 있고 금호강이 흐르는 산 좋고 물 맑은 고장이다. 포은 정몽주와 화약을 발명한 최무선장군, 박인로 장군이 이고장 출신이며 신라시대에 지어진 사찰 거조암(본산은 은해사임)과 은해사가 있는 곳이다.

 

  작은 도시이지만 영천에도 있을 건 다 있다. 학교, 관공서, 도서관, 금융기관, 서점, 식당, 문화관 등. 예전부터 영천은 교통의 요지였다. 이곳 영천에서 갈라져 청송, 안동, 안강, 경주, 포항,  울산, 대구로 갈 수 있다. 말하자면 경상북도와 경상남도 충청도를 연결하는 한반도 동남부의 중심 역할을 하던 곳이었다. 6.25 전란때에는 피난민들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북새통이루기도 했다.

 

  영천시립도서관 뒤쪽 주택가 인근에는 한정식집, 손칼국수집, 횟집 등 식당이 즐비하다. 인구 10만(정확히는 11만 4천명)의 작은 도시 한적한 주택가에 이렇게 많은 식당들이 있다니... 손님이 있긴 할까? 가까이 영천시청과 대구은행지점, 농협출장소 같은 관공서나 금융기관이 있으니 간간이 손님이 찾아오나 보다.

 

   단독주택단지 옆으로는 연립주택들이 들어서 있다. 적지않은 가구가 살고 있을 듯 싶다.  연립주택 뒤쪽으로 삼선아파트, 청구아파트가 두 동씩 들어서 있다. 아파트 앞동의 위층에 사는 사람들은 영천시내를 한눈에 내려다 보며 살것이다.

 

   영천시립도서관 실내는 냉방이 잘 된다. 짧은 옷을 입고 두 세시간 있었더니 한기마저 느껴진다. 입술이 파랗게 변했다. 몸을 좀 녹이고 싶어 밖으로 나왔다. 실내는 초겨울이지만 밖은 찜통이다. 체감온도가 40도는 될 듯 싶다. 

 

   도서관 앞 작은 벤치에 앉았다. 작렬하는 뜨거운 태양 아래 선글라스를 끼지 않으면 눈이 부실 정도이다. 눈 앞엔 볼품없는 작은 정원이 있다. 영천의 시화(시의 꽃)인 장미 한 포기에서 대여섯 송이의 붉은 장미꽃를 피웠다. 무더운 여름 뜨거운 태양 아래서 너무도 늠늠하게 자태를 뽐내고 있다. 

 

   복사열로 덥혀진 뜨거운 공기를 들이마시니 '헉'하고 숨이 막혀온다. 정원 가운데 돌을 깍아 만든 '어머니와 아이의 책 읽는 조각상'이 있다.(조각의 밭침대는 돌로 되어있으나 조각 자체는 석고로 되어있다) 이름있는 작가의 작품이었으면 더욱 좋으련만... 조각상 자체는 조잡 그 자체다. 시골의 여느 학교에서나 볼 수 있는 아무것도 아닌, 작품이라고는 말할 수 없는 허섭쓰레기(?) 같은 것이다. 하지만 조각아래 돌판에 새겨진 글 만은 기억할만 하다. '여기 차가운 돌덩이로 독서상을 세우고 뜨거운 혼에 불을 넣어 이 땅에 삶과 영혼을 살찌게 하고 지혜와 학문과 용기를 북 돋우는 거룩한 진리의 전당을 세웠음을 길이 기념하노라'

 

   은퇴후 이런 작은 도시에서 글을 쓰면서 사는 것도 좋으리라. 가까운 곳에 도서관이 있어 읽고 싶은 책이랑 신문을 마음대로 읽을 수 있고, 글 쓰는데 필요한 자료를 수집할 수 있다. 산책로가 주변에 있어 아침 마다 산책을 하며 자연을 즐길 수 있다. 보현산을 위시하여 주왕산,  팔공산 등 멀지 않은 곳에 이름난 명산도 있다.어느 곳에 있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능력이 있느냐, 필력이 있느냐가 문제이다 

    

   신화를 연구하고 강의하는 작가 이윤기가 1999년에 약 4개월동안 그리스에 머물렀다. 옛 성현들의 자취를 더듬어 각지를 여행하며 신화의 무대인 그곳을 체험했다. 그 체험을 토대로 그리스로마 신화를 알기쉽고 흥미롭게 풀어썼다. 서양문화의 토대와 토양을 제공해준 신화를 독자들이 쉽게 접근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말이다.

 

   영천에서 하루를 보내며 세계로 향해 열려진 창을 본다. 이곳에서 태어난 충절의 인물을 생각한다. 그들의 인물됨을 상기하며 격물치지의 마음으로 살기를 다짐한다. 작가 이윤기가 그랬던 것 처럼 세심한 관찰과 처절한 몸부림으로 많은 것을 체험하며 살고 싶다.  

   <2004/8/13 이택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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