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ition

산에서 가져보는 상념

멋진 인생과 더불어 2004. 8. 25. 09:33
 

<단체산행과 홀로 산행-2004/8/21 관악산 연주암에서>

 

   M제약에서 25명이 단체로 산행을 왔습니다. 공개 채용한 사원들의 협동심을 고양할 목적으로 산행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들이 떠난 후 반들반들 윤이 나는 쪽마루에 A4용지 놓여져 있어 무심코 읽어 보았습니다. 제목은 공채 21기 관악산 등산 계획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첫 줄에 등산목적: 공채 21기 예비합격자의 체력 및 협동심을 테스트하고 M맨으로써의 자질을 점검한다라고 적었습니다.

 

  이들은 팀을 세 개로 나누어 대표 상품인 디스그랜, 이가탄, 콜그린으로 이름을 부쳤습니다. 각 팀별로 산행의 과정과 결과를 평가를 하는데 평가항목은 준비성, 등산시간, 협동심, 낙오여부 등입니다.(계획표에 적혀있음)

 

   이렇게 단단히 계획을 세워 단체로 산행을 하는 것도 색다른 재미가 있고 의미가 있습니다. 등산자체를 즐기자는 목적도 있지만 그들의 평가항목에 나와 있는 것처럼 준비성, 등산시간, 협동심, 낙오여부 등을 평가하여 회사직원이 될 자격이 있는지를 테스트해보자는 목적도 있습니다.

 

   연주대 정상에 오른 이들은 온 산이 떠나가도록 구호를 외쳤습니다. 하나는 모두를 위하여, 모두는 하나를 위하여, 또 다른 팀은 잇몸 튼튼 이가탄, 잇몸 튼튼 이가탄이라고. 팔을 아래위로 흔들며 큰소리로 외칩니다.

 

   단체로 산행을 하면 자발적으로는 산을 오르지 않던 사람도 산을 접하는 장점이 있습니다. 일상과는 다른 환경에서 동료들을 마주하는 즐거움도 있지요. 험한 산을 오를 때 서로를 격려하며 오를 수 있어 협동정신이 함양됩니다. 어쩌면 이 경우 참가자의 입장에서는 산을 오른다는 즐거움 보다는 일한다는 생각이 앞설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와는 다르게 혼자서 산행을 하면 자연을 하나하나 세밀히 보고 즐길 수 있습니다. 사색, 사유가 가능합니다. 내면으로의 여행을 할 수 있지요. 단체로 오면 이런 내면의 기쁨과 여유로움을 즐기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목적자체가 다르기 때문이지요. 무엇이 더 낫고 못하다가 아닙니다. 두 가지가 다 필요합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사유할 수 있고, 관조할 수 있는 혼자서의 산행이 더 선호합니다.

 

나의 젊은 시절을 되돌아 보아도 앞서 단체로 왔던 젊은 이들의 삶과 크게 다를 바 없었습니다. 여러 차레 단체로 산행도 갔었고 앞서 젊은 이들처럼 구호도 외쳤습니다.

 

86년인가 회사에서 단체로 오대산을 갔을 때의 일입니다. 단체로 온 팀의 경우처럼 회사의 직원을 몇 개의 조로 나누어 누가 빠른 시간에 목적지에 도착하나 시합을 하였습니다. 순차적으로 출발시켜 가장 빠른 시간에 목표지점에 도달하는 팀에 시상을 했습니다. 산이라고는 알지 못했던 때라 등산화가 아닌 평소에 신고 다니던 신발을 신고 간 것이 문제의 발단이었습니다.(그때는 등산화를 가지고 있지도 않았음) 겨울이라 온 산이 눈으로 뒤덮였는데 아이젠은 커녕 랜드로바를 신고 눈으로 다져진 길을 달리려니 미끄러져 넘어지기가 일수였습니다. 내리막을 내려 올 때는 거의 엉덩이로 내려왔다고 해야 맞을 것입니다. 혼자라면 빨리 가려고 엄두도 못 낼 것인데 팀의 운명이 달려있으니 서두르지 않을 수도 없고 서두르자니 엉덩방아만 찧고 하여 난감해 한 적이 있습니다.

 

나의 젊은 시절을 짧게 표현하면 조급함, 바쁨, 성취 등 입니다. 무엇이 성공인지 무엇이 잘 사는 것인지도 모른채 성공, 성취 만을 위해 옆도 뒤도 안 돌아보고 앞만 보고 달렸습니다. 보는 눈, 듣는 귀, 세밀한 감각은 사치스러운 것에 불과했지요. 뭐 특별히 이룬 것도 없이 제 멋에 취해 스스로 그렇게 살아온데 대한 회한이 들기도 합니다. 

 

인생에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있다면 지금 나는 인생의 늦여름, 가을의 초입에 해당할 것입니다. 단풍의 아름다움과도 같이 중년의 인생을 잘 가꾸어 가겠습니다. 미국의 조지워싱턴은 43세의 비교적 늦은 나이에 미국의 독립을 위해 본격적으로 나섭니다. 40대는 인생의 새로운 시작입니다. 과거를 잊어버리고 새로운 도전을 시작할 때입니다. 그리하여 인생의 겨울을 멋지게 보낼 준비를 해야 할 때입니다.

 

86년 그때 산에서 내려오자 마자 이상화선배(1997년 작고, 부인 김영자는 세계 최초로 에베레스트를 등정한 여성산악)의 조언으로 등산화를 하나 샀습니다. 신발이 미끄럼의 주 원인을 제공해주었기에 바로 등산화를 샀지요. 15년 이상을 신으니 등산화는 많이 낡았습니다. 특히 밑바닥이 달아 없어졌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그 등산화를 가끔씩 신습니다. 한동안 버려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마음을 바꾸어 평생 가지고 있을 작정입니다. 끈기, 꾸준함의 표본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낡은 신발을 신을 때 마다 느리게 사는 삶, 포기하지 않는 삶, 꾸준한 삶, 덤으로 사는 삶(작고한 상화 선배를 생각하며)의 지혜도 배우겠습니다.

<2004/8/21이택희>

'Position'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0) 2004.09.20
산과 도서관(주말보내기2004/9/4-5)  (0) 2004.09.06
마음 모습에 따라 보이는 모습이 다르다  (0) 2004.08.23
팔공산  (0) 2004.08.17
영천  (0) 2004.08.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