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crifice·시니어

삶은 기다림

멋진 인생과 더불어 2004. 8. 31. 09:20
 <삶이란>

 

혜곡 최순우 선생님(1916-1984)은 국립박물관에서 오랫동안 일하며 나중에는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지내셨다. 그는 우리 문화재와 우리 강산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많은 글을 남겼다. 그가 남긴 글들을 역어 펴낸 나는 내 것이 아름답다(학고재)’를 읽으며 우리 것의 소중함을 다시금 깨닫는다.

  

      혜곡은 ‘수화, 김환기 10주기전에 부친 글에서 수화 선생의 글 솜씨에 대해 다음과 같이 회고 하고 있다. 그의 수필은 그 독특하고도 간결한 문장부터 내용에 이르기까지 그대로 아름다운 산문시 요 그대로 멋이었다. 그는 한국의 멋을 폭 넓게 창조해 내고 멋으로 세상을 살아간 참으로 귀한 예술가였다. 내가 그를 화백이라고 부르지 않는 것은 그의 사색과 예술가적 폭이 그렇게 매우 넓었기 때문이다.  혜곡 선생님은 이 글 말미에서 수화 선생께서 젊은 나이에 이국 땅에서 세상을 떠남을 못내 아쉬워하며 인생의 허무함을 표현 하였다.

 

      혜곡 선생님의 또 다른 글 가지마다 영롱한 보석의 열매에서는 창밑에 이름 모를 나무 한 그루를 심으시고 그 나무가 자라는 것을 보며 그것을 즐기는 마음을 기술하였다. 어린 아이의 마음으로, 때로는 사랑하는 사람을 대하는 마음으로 나무에 대한 애틋한 사랑을 나타내심을 본다.

 

      이 나무가 들어선 곳은 바로 내 방 영창 밑이어서 아침마다 잠이 깨면 영창을 열어 젖혀 놓고 바라보았으며 , 겨울비가 내리는 아침이면 이 루비색 열매와 잔가지마다 이슬이 맺혀서 꽃보다 곱다기보다는 진정 보석보다 곱구나 싶을 때가 많았다. 나는 그럴 때마다 오래 살아야지(자연이 아름다워서) 하는 생각을 뇌까려 보면서 슬픔인지 기쁨인지 분간할 수 없는 행복에 젖고는 했다.

 

       나도 선생님처럼 작은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를 보면서도 깊은 사랑과 애정을 느끼는 심미안을 가지고 싶다.

 

      아쉬운 것은 혜곡 선생님이나, 수화 김환기 선생님이나 너무나 일찍 이승을 떠나셨다는 것이다. 수화의 10주기전에 부친 글을 발표 하신지 1년도 못되어 1984년 12월에 타계하셨다. 선생님의 글을 대하며 삶은 참으로 유한하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그의 표현대로 오래 살아야지 하는 생각은 누구나 하게 되는 것이나 어느 누구도 그 삶의 종장을 알 수가 없다.

    

      최근 개봉된 터미널이라는 영화는 빅터 나보스키(톰 행크스분)라는 평범한 젊은이가 가공의 동유럽 국가 크라코지아에서 뉴욕 케네디 공항에 도착하면서부터 시작된다. 나보스키가 비행기에 있던 시간에 그의 고국에선 쿠테타가 일어나고 일시적으로 유령국가가 되어 버렸다. 갑자기 무국적자가 되어 공항 입국심사대를 빠져 나오지도 못하고 미아신세가 된다. 꿈에도 그리던 뉴욕 땅을 눈앞에 두고 공항 터미널에서 9개월이라는 긴 시간을 보내게 된다.

    

     나보스키는 공항 터미널에서 영어도 배우고, 친구도 사귀고, 일 자리도 구한다. 그러면서 입국허가가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그가 뉴욕에 가려는 목적은 참으로 단순하다. 아버지가 좋아했던 째즈 음악가의 사인을 받기 위한 것이다. 그 단순하고도 소박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그는 오랜 기간을 묵묵히 기다린다.

 

    영화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 역시 그들이 추구하는 그 무엇을 위해 긴 기다림의 시간을 갖는다. 어떤 이는 성공을,  어떤 이는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의 전화를, 어떤 이는 짝사랑 하는 이의 사랑을 얻어내기 위해 기다리는 것이다. 이 영화를 보며 '삶은 우리가 바라는 것을 얻기 위해 기다리는 기나긴 여정'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기다림의 기간동안 의미를 부여하며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다.

     <2004/8/31이택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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