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시

죽음 묵상

멋진 인생과 더불어 2017. 3. 9. 16:43

 입을 잔뜩 벌리고 있다. 온몸에 힘이 들어가고 긴장이 되는 건 어릴 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옆 진료실에서 이빨 가는 소리가 들려올 때면 더욱 그러하다. 젊은 의사가 메스로 잇몸을 가른다. 고등어 머리를 쳐낼 때 비릿한 냄새가 물씬 풍긴다. 혀끝이 짭짤하다.

 

 고향 집 아래 강 언덕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스쳐 지나간다. 왼편으로 플라타너스 숲이 보이고 햇빛 사이로 나뭇잎이 흩날린다. 바닷속을 유영하는 고등어떼처럼 은빛으로 반짝인다. 모래사장이 펼쳐져 있고 한쪽 웅덩이엔 명경(明鏡)같은 물이 고여있다. 굽어진 강을 따라 강물이 유유히 흐른다. 한가롭다.

 

 아래쪽 잇몸 턱뼈에 드릴이 박혀 돌아간다. ‘드르르 드르르’ 물도 함께 뿌려진다. 침이 고인다. 옆에 선 간호사가 입안에 고인 물과 피를 흡입기로 뽑아낸다. 굵기를 바꾸어가며 구멍을 뚫는다. ‘드르르 드르르’ 맞잡은 손에 힘이 더해진다.        

 

 결혼을 앞둔 딸아이가 보내온 사진을 그려 본다. 웨딩드레스를 입고 서서 활짝 웃고 있다. 웃고 있는 딸의 얼굴을 떠올리니 불안함이 가시고 평온해진다.  

 

 의사는 네 개의 이가 심길 자리에 잇몸을 가르고 나사를 박고 있다. 하나가 완성되면 잣대로 확인한 후 또 다른 구멍을 뚫는다. 턱뼈에 진동이 느껴진다. 젊은 의사가 못하겠다고 손을 들어버리면 어떻게 하느냐는 염려가 스쳐 지나간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아귀처럼 입을 크게 벌리고 기다리는 것뿐이다. 뚫린 구멍에 나사를 심는다. 달그락달그락 죄는 소리가 난다얼얼하다.   


 끝없이 펼쳐지는 들판이 보인다. 아내와 걷곤 하는 산책길이다. 길 양옆으로 나무가 빼곡하고 주변엔 들꽃이 가득하다. 살랑거리는 들풀을 바라보며 혼자서 걷고 있다.  

 

 치료하는 시간이 길어지자 몇 번으로 나누어 할 것을 그랬나 싶기도 하다.

 

 언젠가 세상을 떠날 즈음이면 눈은 감겨있고, 피부에 감각도 없어질 것이다. 냄새는 당연히 맡지 못할 것이고. 숨이 끊기기 전까지 소리는 들린다고 하던가. 눈물을 훔치는 아내와 딸들 모습이 그려진다. 찬송 소리가 들린다.        

 흠모하던 그분이 팔을 벌리고 서 계신다. 은근히 피어나는 광채 주변으로 먼저 가신 성도들이 둘러서 있다. 아버님 모습도 보인다. 말없이 미소 지으며 사랑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보신다.    

 

 바늘이 잇몸을 관통한다. 실이 따라 나온다. 한 올 한 올 매듭 짓는다. 간호사가 죽은 자의 얼굴을 닦듯 입술 주변을 닦아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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