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시

담이 높아 보이면

멋진 인생과 더불어 2016. 1. 10. 00:49

담이 높아 보이면

이택희

 어릴 때의 일이다. 골목에서 축구를 하다가 남의 집 담장 너머로 공이 넘어가 버리면 난감하였다. 높은 담을 뛰어넘기도 어려울뿐더러 설사 넘는다 하여도 주인이 쫓아와 야단칠 것 같았다누렁이가 놀라 짖어대기라도 하면 더욱 난망하였다.

 이리저리 서성이다 큰마음 먹고 대문을 두드려 보지만 기척이 없을 때가 더 많았다. 개구멍이 없을까 찾아보기도 하고 친구들이 만들어준 목마를 타고 넘어갈 궁리도 하였다.

 한때는 밀리언 셀러의 저자가 되는 꿈을 꾸곤 했다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용기를 주는 글을 써서 책으로 펴내겠다는 꿈을 꾸었다. 브라질의 작가 파울로 코넬류가 쓴 글을 읽으며 나라고 못 쓸 일은 없지 않겠느냐는 생각도 했다.

 문학적인 글쓰기에 관심을 가지고부터는 실용적 글쓰기가 탐탁지 않게 여겨졌다. 그렇다고 서정적이어서 읽는 사람이 단박에 빠져들게 하는 향기로운 글을 쓰는 것도 아니었다삶에 희망을 주는 글이나 실용적인 글도 쓰지 못하고, 글 향이 멀리 퍼져가는 문학적인 글도 쓰지 못한 채 엉거주춤하고 있었다.

 컴포트 존에 머무르고자 하는 안일함이 커지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이제 와서 뭘 얼마나 더 이루겠다고 하는가 이만하면 되었지라는 생각이 똬리를 틀더니 아예 당연한 듯 주저앉아버렸다하루에 단 몇 줄을 쓰는 것조차 힘들어졌다.

  한 해를 돌아보며 새해 아침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한때 꿈꾸었던 밀러언 셀러의 작가가 되겠다는 꿈은 어디에 팔아먹었는가라는 물음이 들려왔다. 분명하던 그 꿈은 시나브로 바래져 흔적없이 사라져버리고 이런저런 핑계를 일삼는 부끄러운 자신이 보였다.

 

 한국에서 교사로 일하는 친구는 지난해 수필문학관을 지었다. 교사생활을 하며 모은 전 재산을 털어 동료 문인들이 편안하게 책을 읽고, 강의를 들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였다. 문학을 향한 본인의 사랑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친구가 수필문학관을 지었다는 소식을 접하며 과연 친구답다는 생각을 했다. 자그마한 키에 수줍은 미소를 머금은 그가 한없이 크게 느껴졌다

 

 친구가 한 일을 생각하면서 나는 무엇을 하고 있나 반추해본다. 반만이라도 쫓아가면 좋으련만. 가치 있는 일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 이것이 사람으로 태어나 해야 할 일 아니던가

 

 아내는 가끔 말하곤 한다. 담이 높아 오르지 못할 것으로 보이면 가방부터 던져 놓고 보라고. 새해를 시작하면서 먼저 가방부터 담장 저편으로 던져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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