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딸에게, 옹이를 생각하며
너는 어릴 때부터 지는 걸 싫어했어. 그래서 늘 이기곤 했었다. 너는 리더십이 있었어. 한국에서 캐나다로 터전을 옮겨 온 뒤 얼마 되지 않아 학교에서 이미 너를 따르는 그룹이 생길 정도였어.
너는 무슨 일을 하면 반드시 잘 해내고야 말았어. 처음에는 조금 힘들어했을지 모르지만, 곧 따라잡았고 시간이 지나면 늘 잘하곤 했었지 그런 능력이 너를 지금의 자리에 있게 한 거야.
너는 끈기가 있었어. 피아노를 칠 때 십 수년을 매일 한 시간 이상 연습한 거야. 그런 끈기가 너를 만들었지. 그리고 너는 해내고자 하면 반드시 해내. 네가 힙합 춤에 빠져 춤 연습을 할 때도 그랬어. 11학년 12학년이면 공부로 무척 바쁜 시기였지만 네가 좋아하는 춤을 놓지 않았어. 주말이면 몇 시간씩 연습해서 공연에 나가기도 하고 댄스 배틀에도 참가했었지. 사람들은 너희 그룹이 춤을 추면 수준이 다르다고 말했었어. 수없이 연습해서 어떤 경지까지 이르렀던 거지.
딸아 너는 애살이 있단다. 애살이라는 말이 좀 생소할지 모르겠구나. 그 말은 승부욕이 강하다는 말이기도 하고 어떤 깡 같은 것이 있어, 지고는 못 산다는 말이기도 하단다. 무엇을 하면 반드시 잘 해내고야 마는 열정 같은 게 내면 깊은 곳에 숨어있다는 뜻이지. 아빠가 단연코 말하지만 너는 네가 하고 싶은 걸 반드시 하고야 마는 열정과 끈기를 가진 사람이야.
그리고 너는 선택과 집중을 할 줄 알아. 해야 할 일이 있으면 그 일에 집중하여 반드시 해내고야 말지. 선택과 집중은 개인의 삶은 물론 조직의 의사결정에서도 참 중요한데 딸은 선천적으로 선택과 집중 능력이 있는 듯해. 또한 딸은 살면서 경험을 통해 선택과 집중을 하는 능력이 은연중에 몸에 배기도 했을 거야.
딸은 청소년 시절 의사가 되려는 꿈을 꾸었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처절히 노력하였다. 섬에 갇혀 이 년을 공부에 몰두했었고 낯선 곳에서 인턴 생활과 레지던트 생활 그리고 펠로 과정을 거뜬히 마쳤다. 외로움도 있었을 터이고,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여 황당할 때도 있었을 것이고, 과연 이 산을 내가 넘을 수 있을까 막막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겠지만 딸은 보란 듯이 이겨냈고 당당히 해내었단다. 고등학교 시절 같은 교회에 다녔던 친구는 공부를 시작했다가 견뎌내지 못하고 포기했는가 하면 공부가 어렵고 힘들어 삶을 포기한 사람도 있었다고 들었다. 하지만 딸은 어려움을 묵묵히 견디며 수련의 길을 마쳤다. 그리고 이제는 한 대학의 조교수 겸 의사가 되었구나. 생각하면 참으로 대단한 일이다.
딸도 알다시피 한국에서는 대학교수가 되기란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려운 일이란다. 명문대학을 나오고 유학을 다녀오고 해도 대학에서 교수 자리를 얻는다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너는 한국에서도 아니고 미국의 심장이라고 하는 뉴욕에서 공부했고 좋은 학교의 하나로 소문난 뉴욕주립대 버펄로 대학병원에서 의사 겸 조교수가 되었으니 놀라운 일이지. 어디 그뿐이냐. 남들은 코로나로 힘들어할 때 병원에서 환자들을 돌보며 논문을 썼고 그 논문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의학저널의 표지에 실리는 일까지 있었다. 지금까지 딸이 이뤄낸 업적만 해도 입이 딱 벌어져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야.
하지만 펠로 과정을 마치고 이제 막 대학병원의 의사이자 교수가 되었으니 어려움도 없지 않을 거야. 젊은 나이에 어탠딩 의사가 되었고 교수가 되었으니 권위가 생기려면 시간이 다소 걸리겠지. 그러나 아빠는 딸을 믿는다. 딸이 어디에 가서든 그래 왔던 것처럼 이번에도 잘 극복하고 노력하여 보란 듯이 실력 있고 권위 있는 의사가 될 거야. 학생들을 잘 가르치고, 학생들을 사랑하며, 학생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교수 중 한 사람이 될 거야.
딸아 나무에 옹이가 있는 것처럼 우리의 삶에도 옹이가 있게 마련이란다. 옹이가 없다면 자기만 잘났고 자기만 최고인 양 교만할 수 있지. 또 주변 사람들을 배려할 줄 모르고 자기만 아는 사람이 되기에 십상이란다. 아는 대로 나무의 옹이는 아픔을 이겨내고 견뎌내었다는 증거이지. 찍히고 할퀴어진 상처가 저절로 아물었거나 세월이 지나는 동안 깊은 옹이로 자리 잡은 것이지. 옹이는 힘든 시기를 거쳤다는 증거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그 옹이 때문에 기분 좋은 칭찬 앞에서도 우쭐대지 않고 근거 없는 비난을 받아도 기죽지 않게 될 거야. 실패도 성공도 홀로 잠잠히 다스리며, 뼈를 깎는 외로움 속에서도 노래를 부를 수 있게 되지. 옹이는 눈물이지만 훗날 네가 숨 쉴 수 있는 구멍이며 쉴만한 호수가 될 것이야. 이제 막 어탠딩을 시작하여 어려움이 앞을 가로막을 때 나무의 옹이를 한번 생각해보렴.
딸은 딸 앞에 주어진 어려움을 삶의 자양분으로 삼게 될 것이야. 11학년 12학년 때 춤을 출 때 그랬던 것처럼, 또한 한국에서 캐나다로 옮겨와서 몇 년 만에 최우수 학생으로 R.J. Rang을 졸업했던 것처럼 말이다. 딸의 몸속에 녹아있는 삶의 습관이 반드시 딸을 그렇게 만들어 줄 것이다.
이번 추수감사절에 함께 식사하면서 병원에서 진료하는 것도 또 학생들을 대하는 것도 익숙해져 간다는 말을 듣고 무척이나 기뻤다. 나는 적응하는데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생각했는데 벌써 조금씩 적응해가고 있고 익숙해져 간다는 말을 들을 때 과연 너답다는 생각을 했었어.
딸이 꼭 잊지 말라고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어. 그것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딸과 함께하시며 딸을 돕고 있다는 사실이야. 그분은 세상 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실 만큼 능력이 있는 분이며 크신 분이야. 그분이 지혜를 눈동자처럼 보호하시며 삶을 인도하고 계셔. 그러니 딸아 혹 힘든 일이 있으면 그분께 의지 하렴. 그분께 도움을 구하면 반드시 도와주시고 응답해 주실 거야.
최근 한국에서 보내주신 책을 읽다가 문득 딸을 응원하는 글이 쓰고 싶어져 몇 자 적어 보낸다. 행복한 나날 보내고 수고하렴.
2020년 10월 15일 아빠가.
Faculty Profile - Jacobs School of Medicine and Biomedical Sciences - University at Buffalo -
https://medicine.buffalo.edu/faculty/profile.html?ubit=jlee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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