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대 뒤편에서 열심히 공을 주워 나르는 할아버지가 보입니다.
슛이 골대를 지나 멀리 날아가면 숨을 헐떡이며 달려가 공을 주어 골키퍼에게 가져다줍니다. 구태여 하라고 해도 귀찮아서 하지 않을 일을 자진해서 하고 계십니다. 누가 시킨 일도 아니고, 돈이 생기는 일도 아닙니다.
가까운 곳에만 떨어지면 좋을 텐데 공은 산지사방으로 흩어집니다. 숨을 헐떡이며 달려가 주워오는 모습이 안쓰럽습니다. 잠깐하고 말려니 여겼습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처음부터 끝까지 볼 보이를 하고 계십니다. 선수들은 중간중간 교체를 하기에 쉴 시간이라도 있지만, 할아버지의 경우는 쉴 시간도 없습니다.
이날 경기는 본 남성합창단이 공연을 마친 후 그곳 교회의 식구들과 우의를 다지기 위해 벌인 시합이었습니다.
경기를 마친 후 옷을 갈아입었습니다. 지인 한 분이 다가오더니 조심스레 묻습니다.
“혹 K고등학교를 나오지 않으셨습니까?”
“그렇습니다.”
“잠시 이쪽으로 따라와 보십시오.”
담벼락 쪽으로 가보니 조금 전까지 볼 보이를 하셨던 할아버지가 겸연쩍은 미소를 짓고 서 계십니다. 수줍은 듯 보이기도 하고, 괜한 짓을 했나 후회하는 듯 보이기도 합니다.
“이 분을 모르시겠습니까?”
할아버지의 얼굴을 자세히 보니 낯이 익습니다. 갑자기 수십 년 전 고등학교 다닐 때의 기억이 머리를 스칩니다.
“혹 김정규?”
“그래.”
“너 정규였구나, K고등학교 출신.”
이날 저녁 헤어진 후 친구의 모습을 다시 떠올려보았습니다. 만나지 못한 사십 년 동안 친구가 어떤 자세로 세상을 살았는지 짐작이 되었습니다. 젊은 사람들이 모여 축구를 하는데 숨을 헐떡이며 열심히 볼을 주워 나르던 모습이 바로 그동안 친구가 살아온 방법이었겠지요.
친구는 대학을 졸업하고 80년대 후반 일본으로 들어가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었다고 합니다. 일본에서 교회를 짓는 등 분주히 사역하다 이 년 전 안식년을 가지기 위해 토론토에 왔다고 했습니다.
친구가 어떤 마음으로, 왜 볼보이를 하였는지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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