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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의 힘(백무산) 외

둥둥 걷어붙이고 아부지 논 가운데로 비료를 뿌리며 들어가시네 물 댄 논에 어룽거리는 찔레꽃 무더기 속으로 아부지 솨아 쇠르르 비료를 흩으며 들어가시네 소금쟁이 앞서가며 둥그러미를 그리는 고드래미논 가운데로 아부지 찔레꽃잎 뜬 논 가운데 한가마니 쏟아진 별 거기서 자꾸 충그리고 해찰하지 말고 땅개비 개구리 고만 잡고 어여 둥둥 걷어붙이고 들어오라고 아부지 부르시네 네가 온다는 날 마음이 편치 않다 아무래도 네가 얼른 와줘야겠다 바람도 없는데 호수가 일렁이는 건 바로 그 때문이다. 기차를 세우는 힘, 그 힘으로 기차는 달린다 시간을 멈추는 힘, 그 힘으로 우리는 미래로 간다 무엇을 하지 않을 자유, 그로 인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안다 무엇이 되지 않을 자유, 그 힘으로 나는 내가 된다 세상을 멈추는 힘..

미셀러니 2024.07.09

내가 사랑한다고 말하면 다들 미안하다고 하더라

"내가 사랑한다고 말하면 다들 미안하다고 하더라”/황인찬 공원에 떨어져 있던 사랑의 시체를 나뭇가지로 말았는데 너무 가벼웠다 어쩌자고 사랑은 여기서 죽나 땅에 묻을 수는 없다 개나 고양이가 파헤쳐버릴 테니까 그냥 날아가면 좋을 텐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날 꿈에는 내가 두고 온 죽은 사랑이 우리 집 앞에 찾아왔다 죽은 사랑은 집 앞을 서성이다 떠나갔다 사랑해, 그런 말을 들으면 책임을 내게 미루는 것 같고 사랑하라, 그런 말은 그저 무책임한데 이런 시에선 시체가 간데온데없이 사라져야 하는 법이다 그러나 다음 날 공원에 다시 가보면 사랑의 시체가 두 눈을 뜨고 움직이고 있다 사랑은 서로 오갈 수 있는 완전한 통행이면 좋겠지만, 다수의 사랑은 ‘일방통행’입니다. 마치 강물이 위에서 아래로, 바뀜이 ..

미셀러니 2024.0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