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堂姪 기헌

기헌은 나의 멘토 중 한 사람이자 존경하는 사촌 이경희 형님의 큰아들이다. 형님은 큰집 큰아들이고 나는 작은 집 큰아들이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세 아들을 두셨는데 할아버지는 내가 세상에 태어나기도 전에 돌아가셨고, 할머니는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 세상을 뜨셨다. 할머니 입장에서 보면 경희 형님은 큰아들에게서 난 큰손주이고 나는 셋째 아들에게서 태어난 큰손주이다. 엄격하기 그지없던 유교 집안의 며느리였던 할머니가 집안에서는 처음으로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였고 제사를 없애버리셨다. 서동댁이라는 택호로 불리셨던 이남숙 할머니는 어려운 중에도 꿋꿋이 신앙을 지키며 녹록지 않은 살림을 꾸리셨다. 대가 세고 강인한 성격의 할머니는 하루 세 시간씩 거적을 뒤집어쓰고 뒤란에서 기도하셨다. 할머니는 경희 형님과 내가 신학..

시온이와 함께 웃은 날

소파에 비스듬히 기대고 앉아 고개를 들면 길게 뻗은 가지가 보였다. 오십은 족히 넘어 보이는 고목이 지붕을 뒤덮고 있었다. 하늘로 뻗은 가지가 이층집 높이의 두세 배는 되어 보였다. 이웃집 지붕에까지 팔을 뻗치고 있었다. 오후 내내 눈이 내렸고 활짝 핀 눈꽃을 바라보았다. 태어난 지 육 개월을 넘긴 시온은 할아버지를 웃고 또 웃게 했다. 3/11/2022

나는 무엇을 어떻게 보고 있나?

*김선태 원장은 그의 저서 '*인생은 나이아가라 폭포처럼'의 머리말에 아래와 같이 썼다. “나이아가라 폭포는 신비하고 웅장한 소리를 내면서 밤낮으로 쉬지 않고 떨어진다. 폭포 그 자체가 잠시도 쉬지 않는 생명체이다. 사람도 밤낮으로 신비한 감격을 선사하며 선하게 생각하고, 선하게 살 수는 없을까? 나이아가라 폭포에서 쏟아져 내리는 그 물이 어디로 가는지는 모르나 고이지 않고 쉼 없이 흘러간다. 사람도 변함없는 믿음과 신념과 마음으로 나이아가라 폭포처럼 살 수 없을까? 나아아가라 폭포의 존재는 놀랍다. 떨어지는 물만 보아도 기쁨과 힘이 절로 흘러넘친다. 사람도 보면 볼수록 이웃에게 기쁨을 주고 힘이 되는 사람이 될 수는 없을까? 나이아가라 폭포는 낮에 보나 밤에 보나 그 모습이 아름답다. 사람 역시 언제 ..

미셀러니 2022.03.04

종기

매일 하던 샤워를 일주일째 못하고 있다. 등에 난 종기를 치료하고 있기 때문이다. 곪은 곳을 째서 고름을 짜내고 헝겊을 집어넣어 피와 고름을 빼내고 있다. 종기가 난 곳이 등 쪽이어서 볼 수 없으니 짐작할 따름이다. 이 년 전 등에 여드름이 났었다. 짜내는 과정에서 뿌리를 완전히 제거하지 못하여 안쪽에서 곪은 것으로 보인다. 당시 아내에게 등에 난 여드름을 짜 달라고 부탁했다. 아내는 잠시 해보더니 속 간지러워 못하겠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한 번만 더 힘써보면 뿌리가 뽑힐 것이니 수고해 달라는 간청을 애써 못 들은 척했다. 몇 달 전부터 조금씩 부풀어 오르기 시작하더니 구슬만큼 커졌다. 셔츠를 입으면 도드라져 보일 정도가 되었다. 이 주일 전쯤부터는 부풀어 오른 곳이 가렵기 시작하더니 붉게 변했다. 안..

미셀러니 2022.03.04

봄을 기다리며

꽃피는 춘삼월이라 했던가. 새해를 맞은 지 두 달이 훌쩍 지나갔고 삼월로 접어들었다. 머지않아 숲속 나무는 뿌리로부터 물을 길어 올리기 시작하리라. 봄기운이 마음을 설레게 했던 걸까. 이른 봄이면 태자 누나는 쑥을 따러 다녔다. 누나는 어머님 쪽 먼 친척뻘이었는데 어머니를 도와 부엌일이며 집안일을 하며 함께 살았다. 찬바람이 코끝을 스치는 이른 봄이면 누나는 바구니를 옆에 끼고 쑥을 따러 나섰다. 따온 쑥을 모았다가 쑥국을 끓여 먹기도 했고 떡을 만들어 먹기도 했다. 초록빛이 나는 쑥떡은 쫄깃쫄깃했고 쑥 냄새가 물씬 풍겼다. 지난해 봄 아내가 알려주는 숲으로 가서 산마늘(명이나물)을 땄다. 아내는 한 움큼 따온 산마늘에다 갤러리아에서 사 온 산마늘을 합하여 김치를 담갔다. 산마늘의 진한 향은 봄의 희열 ..

이어령 선생님 고맙습니다

이어령 선생님 고맙습니다. 하나님 품에서 편히 쉬십시오. 사랑하는 따님 이민아 목사님과 감격의 포옹을 하실 선생님 모습을 그려봅니다. 선생님을 추모하며 중앙일보에 실린 평론가 김주연 님께서 쓰신 글과 조선일보에 실린 기사, 이인화 소설가의 글을 올려놓습니다. 이어령, 그는 문화의 자부심이었다. 정확하게 말한다면, 문화라는 영역에 영예를 입혀준, 말의 정확한 뜻에서, 과감한 크리에이터였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내가 아는 진정한 진보주의자였다. ‘진보’라는 말이 정치적으로 다소 폭넓게 쓰이는 것 같은데, 이어령이야말로 참다운 진보 그 자체였다. 그는 매일 새로운 말을 한다. 이미 있는 말도 그 의미를 뒤집고 작은 한 조각의 말마디에서 거대한 해석을 이끌어낸다. 그의 문화는 그렇게 진보적 형성을 이루어 가면서..

미셀러니 2022.03.02

여우 만난 아침

황금빛 털을 가진 여우 한 마리가 사뿐사뿐 걸어가고 있었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여유 있는 걸음걸이였다. 금방 목욕이라도 한 듯 말갛고 잘생긴 녀석이었다. 눈 더미 사이로 난 길을 유유히 걸으며 시야에서 사라져갔다. 현관 앞에 서서 한참 동안 바라보고 서 있었다. 주말에만 함께 지내는 아내가 뒤뜰에 토끼가 있으니 보라고 말했다. 나는 그럴 리가 없다고 했다. 토끼는 지금 깊은 *겨울잠에 빠져있을 거라며, 청설모(squirrel)를 잘못 본 것이라고 호기롭게 말했다. 못 이긴 듯 내려다보니 토끼 한 마리가 눈 위를 오락가락하며 빠져나갈 공간을 찾고 있었다. 영하 십 도가 넘는 강추위가 수일 째 계속되고 있는데 어떻게 저렇게 서성이나 싶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온 땅이 꽁꽁 얼어붙은 데다 눈까지 수북..

불평

‘다보스 2017 글로벌 임금계산기’에 따르면, 전 세계 사람들의 연간 평균임금은 20,328달러(약 2,300만원)라 한다. 인도는 연 1,666달러(약 180만원), 브라질은 연 4,659달러(약 530만원), 러시아는 연 5,457달러(약 600만원)이다. 아프리카의 말라위는 연 1,149달러(약 130만원)가 채 안 된다. 지구촌의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기본 생활조차 영위하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약 7억 8,500만 명의 사람들이 기본적인 식수조차 얻지 못하고 있다. 지구촌 인구의 10%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먹을 물을 얻지 못하여 힘들어 한다. 8억 2,00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영양실조에 걸린 것으로 기록되었다(2018년 ..

가,만,이 정신

일단 행동하라는 가르침은 문제 해결에 큰 도움이 됩니다. 매킨지의 경영전략연구가인 리처드 파스케일은 “성인은 생각을 통해서 새로운 행동방식을 얻는 것이 아니라, 행동을 통해서 새로운 사고방식을 얻는다.”라고 했습니다. 허미나아 아이바라 교수는 ‘아웃사이트’에서 행동으로 이어진 외적 통찰력에서 배우라고 강조합니다. 과도한 계획보다는 행동이 먼저라는 말입니다. 엔서니 라빈스가 쓴 ‘네 안에 잠든 거인을 깨워라’를 보면 행동을 유발하는 요인으로 크게 두 가지를 꼽습니다. 첫째는 행동했을 때 얻는 행복과 성취감이 자신이 원하는 것과 일치할 때입니다. 둘째는 행동하지 않았을 때 오는 고통을 감당하기 어려울 때입니다. 세상에 가장 상대하기 어려운 사람은 자존심을 내세우는 사람입니다. 가장 편한 사람은 진솔한 사람입..

미셀러니 2022.02.18

공부와 나

자랄 때 부모님은 ‘공부해라’는 말씀을 입에 달고 사셨다. 내 이름이 '공부해' 인 줄로 착각할 정도였으니까. 큰아들이 열심히 공부하여 좋은 대학에 가고 직장을 잘 잡아 반듯하게 살기를 원하셨기 때문이었으리라. 하지만 볼 때마다 공부하라고 하시는 부모님의 채근이 몹시 싫었다. 부모님이 그토록 원하셨던 공부를 제대로 해야겠다는 절실함이 생긴 건 제대하기 6개월 전쯤이었다. 군 복무를 마치고 스무 살이 훌쩍 넘었을 때 이제는 홀로서기를 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생겨났다. 가정을 이루고 살려면 공부를 제대로 하여 직장을 잡는 길밖에 없었다. 이후 죽기 살기로 공부에 매달렸다. 다행인 것은 늦게 철든 대신 ‘평생 공부하며 살겠다’고 다짐한 것이다. 지금도 나는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매 순간 깨닫고 배워가는 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