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셀러니 322

묵은 우정

함께 할 친구가 있다는 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도움을 요청하면 열일 제쳐두고 달려와 기꺼이 손을 내미는 친구, 고민을 털어놓으면 자신의 일처럼 귀담아들으며 공감해 주는 친구, 삶의 무게를 견뎌내느라 연락을 못하고 지낼 때에도 우정과 믿음을 손톱만큼도 의심하지 않을 수 있는 친구, 나답지 않은 실수로 힘들어할 때 그만한 이유가 있으려니 하고 믿어주는 친구, 언제나 기댈 어깨를 내어주며 내 편이 되어주는 친구, 그런 친구가 있으니 얼마나 든든한가! 함께 노래하며 화음을 맞추었고, 주말이면 테니스를 쳤다. 때로는 공을 차며 놀기도 했던 우리, 서울과 토론토에서 함께 하는 동안 강산은 네 번이나 변하였지만 우정은 세월이 갈수록 더 돈독해진다. 그래서인지 그가 있는 곳이면 고향처럼 여겨지고 살맛 나는 세상이 ..

미셀러니 2023.08.04

텃밭 정경

버펄로에서 한동안 지내다 돌아온 아내가 텃밭에서 수확에 한창이다. 올해는 고추가 풍년이라며 고추를 따더니 부추를 자른다. 호박은 미리 따서 쟁여두었다. 내일 카페에서 자원봉사로 일하는 이웃과 나누기 위함이란다. 그리 넓지 않은 텃밭이지만 풍성하게 내어주니 고맙기만 하다. 나는 과연 가슴을 활짝 열고 내어주며 사는지 스스로 물어본다. 간장종지 만한 마음 그릇으로 이것저것 따지기만 하고 내어줄 줄 모르는 사람은 아닐는지. 품이 넓고 너그러운, 누구나 와서 기댈 수 있는 그런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그리 넓지 않은 텃밭이 품고 또 품어 내어 주고 내어주는 것처럼.

미셀러니 2023.07.30

제준과 감사한 나날

2023년 7월 18일 손주 제준이 태어났다. 내게 주신 세 번째 기적이자 고귀한 선물! 산모와 아기 모두 건강하여 감사하다. 큰딸과 사위 그리고 제준이 병원에 있을 2박 3일 동안 아내와 나는 큰 손주 제영이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하듯 버펄로 하늘은 유난히 파랬고 흰구름이 두둥실 떠다녔다. 제준이 집으로 온 날 제영은 많이 울었다. 엄마 아빠와 떨어져 있었던 시간으로 인하여 서러웠을 것이고 처음 대하는 동생의 존재가 낯설었을 것이다. 둘째 가족은 밴쿠버에서 있은 친구 결혼식에 참석한 후 하와이로 가서 며칠 지내고 있다. 곧 태어날 아기를 기대하며 보내는 베이비문이라고 한다. 올해도 텃밭 농사는 그럭저럭 잘되어 어제오늘 애호박 열여섯 개를 땄다. 내게 이런 날들이 올 줄로 기대는 했..

미셀러니 2023.07.22

테너 박인수 선생

테너 박인수 선생님이 돌아가셨다. 나는 박 선생님의 목소리를 무척 좋아했다. 호방한 그의 성격 또한 참 좋았다. 1977년 나는 오페라 카르멘을 공연하는 무대에 합창 단원으로 함께 선 적이 있다.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연주를 할 때 무대 뒤 서늘하고 퀴퀴하던 공기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돈호세 역은 테너 김진원 선생님이, 미카엘라 역은 박인수 선생님의 부인인 안희복 씨가 맡았다. 당신의 아내가 주역을 맡아서였는지 선생님의 얼굴을 가끔 뵐 수 있었다. 막 스무 살을 넘겼을 나이라 그랬는지 선생님이 멋있어 보였다. 이후 서울대 교수로 가셨다는 소식을 접하고 반가워 하기도 했다. 박인수 선생님뿐 아니라, 테너 홍춘선 선생님, 바리톤 이인영 선생님, 베이스 오현명 선생님도 돌아가셨다. 한때 성악 레슨을 받으며..

미셀러니 2023.03.06

함께 밥 먹는 일

내 기억 속에 텅 빈 공간이 있다. 아무것도 없는 마치 백지 같은 공간. 김호연 작가가 쓴 소설 '불편한 편의점'에 나오는 독고처럼 자신의 과거를 모두 잊어버린 깜깜함이 내게도 있다. 독고가 자신의 과거를 기억하지 못한다면 나의 경우 과거 자체가 존재하지 않은 점이 다를 뿐이다. 그 백지 같이 텅 빈 공간은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식사 시간이다. 일과를 마친 후 온 식구들이 식탁에 둘러앉아 하루에 있었던 일을 오손도손 이야기하며 정겹게 밥 먹는 평범한 일상의 시간이 내게는 없다. 두 딸이 한창 자랄 무렵 십 년 동안 소위 말하는 기러기 아빠로 가족과 떨어져 지냈기 때문이다. 어린 자녀들과 함께 젊은 부부가 식탁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하는 장면을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보기라도 하면 부럽다 못해 아련..

미셀러니 2022.12.30

친구

따뜻한 마음으로 베풀어주신 소중한 잔치자리 오래 가슴에 담아두고 자주 꺼내보며 미소 짓겠습니다. "오랜 침묵을 건너고도 항상 그 자리에 있네 친구라는 이름 앞엔 도무지 세월이 흐르지 않아 세월이 부끄러워 제 얼굴을 붉히고 숨어 버리지 나이를 먹고도 제 나이 먹은 줄을 모른다네 항상 조잘댈 준비가 되어 있지 체면도 위선도 필요가 없어 있는 그대로의 서로를 웃을 수 있지 신은 우리에게 고귀한 선물을 주셨네 우정의 나뭇가지에 깃든 날갯짓 아름다운 새를 주셨네" - 의 일부 얼마나 다정한가 ´우리´라는 말 그보다 따뜻한 말 나는 알지 못하네 눈이 맑은 그대 얼굴 바라볼 때에 외로웁지 않겠네 우리 함께 한다면 너와 내가 혼자 서 있을 때엔 빙산처럼 차가웠던 잿빛 슬픔도 ´우리´라는 말 앞에선 봄눈 속의 아지랑이 ..

미셀러니 2022.12.29

사람들에게 친절할 것, 좋은 목표를 가질 것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다양한 각자의 이유로 불행하다.” - 톨스토이 행복한 가정은 모두 똑같다는 데 무엇이 똑같다는 것일까? 행복한 개인들은 몇 개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을까? 그 공통점을 우리 안에서 개발하기 위해 노력해 보면 어떨까? 마이클 조던은 it factor를 가지고 있는 대표적인 사람으로 일컬어진다. 마이클 조던을 마이클 조던으로 만든 특징은 무엇일까? 톰 브레디는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을까? GOAT(Greatest Of All Time)인 김연아, 버락 오바마 같은 사람들은 어떤 삶의 습관을 가지고 있을까? 행복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이야기하면서 행복해지려는 전략은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럼 행복한 사람들의 it factor를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

미셀러니 2022.12.29

삶의 영성

시무장로에서 은퇴한 다음날(2022년 12월 26일) 헨리 나우웬의 '삶의 영성(A Soirituality of Living)'을 읽는다. 이 책은 두란노에서 2013년 8월 5일 초판이 나왔고 2022년 4월 12일 20쇄로 재판되었다. 헨리 나우웬은 ‘내 안에 하나님이 활동하실 공간이 있는가?’라고 물으며 ‘고독의 제자도: 하나님과 단둘이 있는 영성’, ‘공동체의 제자도: 서로 약한 모습을 받아들이는 영성’, ‘사역의 제자도: 고통의 자리에 찾아가는 영성’을 소개하며 하나님께 내 드리면 풍성한 열매가 맺힌다고 설명하고 있다. 발문을 쓴 네이턴 볼(Nathan Ball)은 “물론 헨리는 교사이고 작가였다. 헨리는 심리학고 신학으로 학위도 받았고, 그에게는 명문대 교수라는 지위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본..

미셀러니 2022.12.27

시무 은퇴를 앞두고

출석할 교회는 집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해야 한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었다. 결혼 후 송파구 방이동에 보금자리를 마련한 후 아내와 나는 집에서 10분 거리인 수동교회에 등록했다. 이후 캐나다에 이주하기 전까지 10여 년 수동교회에서 기쁘게 신앙생활을 했다. 당시 수동교회의 담임목사는 정완모 목사님이셨는데 두 딸들이 이 교회에서 유아세례를 받기도 하였다. 1995년 2월부터 토론토와 뉴욕에서 도합 3년여 머무르다 1997년 말 한국으로 되돌아갔다. 이후 10년간 기러기 아빠로 살다가 2007년 4월 한국생활을 정리하고 토론토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다. 캐나다로 돌아온 후 출석할 교회를 찾았다. 몇 가지 기준을 가졌었는데 가장 중요한 기준은 집 가까운 곳에 위치하여야 한다라는 점과 강단에서 선포되는 말씀이 나에게..

미셀러니 2022.12.20

눈 내린 날

밤늦게까지 눈이 내렸다. 15 센티 가량 내린 듯하다. 아침에 도로 사정이 나쁠 것으로 예상하였으나 밤새 깨끗이 치워 통행에 지장이 없었다. 눈 치우기 월드컵이 있다면 아마도 토론토 사람들이 유력한 우승 후보일 터이다. 집집마다 눈 치우는 광경을 지켜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어떤 집은 스노 블로어라는 장비를 이용하고 어떤 집은 큰 삽을 이용하여 눈을 퍼낸다. 온 가족이 함께 눈을 퍼내는 집도 있고 남자 혼자 열심히 눈을 치우는 집도 있다. 우리 집의 경우는 주로 혼자서 퍼내는 편이다. 눈 치우는 데 걸리는 시간은 대개 한 시간 내외. 나이 드신 분들만 사는 가정은 사람을 고용하여 눈을 치우기도 한다. 더 나이가 들어 거동이 불편해지면 주택에서 콘도(한국으로 치면 아파트)로 이사를 가기도 한다. 눈을 치우고..

미셀러니 2022.1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