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 1655

역사 소설 '여명과 혁명 그리고 운명'

정진호 교수는 서울대학교 재료공학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MIT에서 공부했다. 연변과학기술대학과 평양과학기술대학에서 오랜 기간 학생들을 가르쳤다. 두 대학에서 학생들을 지도하는 동안 교수로서 누릴 수 있는 명예나 경제적인 이익은 내려놓아야 했다. 세계 각국에서 모인 교수들은 대부분 자원봉사자로 학생들을 가르쳤기 때문이다. 나는 정진호 교수의 이런 희생과 열정에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지니고 있었다. 토론토 본 한인교회에서 진행된 ‘통일 비전 교실’이라는 강좌를 들은 후에는 정 교수가 더 가깝게 느껴졌다. 10주간 진행된 강의 중 내가 들어갔던 강의는 단 두 차례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 시간에 배운 내용만으로도 제법 많은 것을 깨우칠 수 있었다. 강의를 들으며 느낀 점은 나 자신이 한국 근현대사에 대해 너무..

오크리지즈 트레일(Oak Ridges Trail)

2월 들어 첫 번째로 맞는 주일입니다. 온라인으로 주일 예배와 소그룹(촌) 모임을 마치고 트레킹 코스를 걷기로 하였습니다. 파란 하늘이 보이고 환한 햇볕이 눈 쌓인 대지 위로 내려앉습니다. 영하 십 도의 추위지만 검은 마스크가 얼굴을 감싸주어 그다지 춥게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시간을 충분히 가지고 여유 있게 걸어보기로 했습니다. 평소 만 걸음 내외를 걸었다면 오늘은 그 두 배를 걸을 작정입니다. 뽀드득뽀드득 눈 밟는 소리가 정겹습니다. 어릴 적 눈싸움을 하며 뛰놀았던 생각이 납니다. 태어나고 자란 곳은 드물게 눈이 내렸습니다. 곱던 눈은 하루도 못 가 녹아버리곤 하였지요. 이곳 온타리오의 트레킹 코스엔 12월부터 4월까지는 눈이 쌓여있다고 보아도 좋을 것입니다. 능선을 따라 걸을 때면 칼바람이 뺨을 때립..

성영을 생각하며

쫓아오던 햇빛인데 지금 교회당 꼭대기 십자가에 걸리었습니다 첨탑이 저렇게도 높은데,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 종 소리도 들려 오지 않는데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이다가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그리스도에게 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 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힘없이 내뱉으며 고통스러워하시는 그분 목소리. 십자가 십자가 날마다 말하고 노래 부르지만 정작 그분이 당하신 그 고통을 제대로 상상이나 해보았을지.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 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다’는 시인의 절절함이 내게는 없다. 이웃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받아들일 줄 아는 절실함은 도대체 어디로 갔는가! 성영을 생각하며 고뇌에 찬 기..

친구여 잘 가시게

친구 김정규 목사의 장례식에 참석했다. 캐나다의 경우 관을 열고 유족과 조객이 고인의 얼굴을 볼 수 있게 한다. 팬데믹이라 장례식장에 가족과 조객이 한꺼번에 들어가지는 못하고 열 명씩만 들어갈 수 있었다. 밖에 줄을 서서 입장을 기다리던 중 아내와 자녀들의 절규가 들려왔다. 남편과 아빠가 병원에 들어간 1월 4일 이후 처음 만나는 것이다. 건강한 모습으로 병원에 걸어 들어가셨는데 싸늘한 시신이 되어 나오니 적응이 안 되는 것이다. 아내와 자녀들이 오열하는 소리에 억장이 무너졌다. 두 번의 뷰잉 후 가족과 지인 열 명이 장례 예배를 드렸다. 친구 목사가 젊은 시절 결혼하는 모습과 어린아이들을 안고 좋아하는 모습 그리고 일본에서 목회하는 모습이 화면을 통해 비쳤다. 사진 속에는 젊은 친구가 아내, 자녀들과 ..

걷는 행복

집 가까이에 있는 트레킹 코스를 걸었다. 무릎에 보호대를 차고 아내와 스틱을 하나씩 나누어 들고 길을 나섰다. 보호대를 차고 스틱을 짚으며 걷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무릎이 아파 걷지를 못한다고 앓는 소리를 하자 주변 사람들이 보호대를 차보라고 권했다. 아마존에서 무릎 보호대와 스틱을 주문하였고 오늘 처음으로 사용하게 된 것이다. 눈이 와서인지 트레킹 코스는 겨울왕국을 이루고 있었다. 나무로 둘러싸인 트레킹 코스는 그야말로 장관, 캐나다 온타리오에서 영하 11도의 추운 날씨에 아내와 트레킹 코스를 걷는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육십을 넘긴 나이에 처음으로 스틱을 들고 무릎 보호대를 차고 눈 쌓인 온타리오 숲을 걷는 건 살짝 흥분되는 일이기도 했다. 아내가 요즈음 친구들과 다니는 코스 중 하나인데..

어린 시절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

아내가 어린 시절의 자신에게 무슨 말을 해주고 싶은지 물었다. 뜬금없는 질문에 바로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잠시 망설이다 생각해냈다. “지금의 네가 참 좋아.” “너는 앞으로 잘 될 거야.” “너는 충분히 잘하고 있어.” 뭐, 그런 말들이었다. 어린 시절 철모르던 개구장이였다. 하라는 공부는 하지 않고 동네 친구들과 어울려 막대기로 칼싸움을 하고 놀았다. 더 어렸을 때는 소꿉놀이를 했다. 딸부잣집이었던 윗집에는 순님이 누나와 순교 누나가 있었고 나보다 한 살 적은 점둘이가 있었다. 윗집 누나와 점둘이, 바로 밑의 여동생 미경이와 함께 자주 소꿉놀이를 했다. 남자는 나뿐이어서 자연스럽게 소꿉놀이를 하며 놀지않았나 싶다. 숨바꼭질도 빠지지 않는 놀이였다. 대구 사과가 유명하던 그때 우리가 살던 집은 사과밭이..

김정규 목사를 추모하며

친구 김정규 목사를 추모하며 아빠를 생각하며 자녀들이 쓴 편지를 읽어드리겠습니다. “우리 아빠는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셨고 영혼 구원하는 것과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을 가장 기뻐하셨습니다. 우리 아빠는 가정을 사랑했고 누구를 만나든 웃음으로 대해주는 우리 아빠였습니다. 우리들이 모르는 것이 있으면 같이 생각해 주시고 밝은 웃음으로 기뻐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어디를 가면 밤늦은 시간에도 아무리 먼 곳이라도 데리러 오셨습니다. 우리가 어디를 가고 싶다 하면 어디라도 데리고 가셨습니다. 한 명 한 명을 사랑해 주었던 우리 아빠. 아빠 보고 싶어요. 우리 아빠 고마웠어요. 아빠 잘 가요 하나님 나라에서 편히 쉬어요. 하나님 나라에서 만나요. 사랑해요. 주영, 주혜, 주성, 주희 올림” 고인인 김정규 목사와 저는 ..

미셀러니 2021.01.26

구들목에 언 손 녹이는 듯

친구 김정규 목사(64)가 사경을 헤매고, 가족들이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돼 고통 중에 있다는 소식이 캐나다 토론토 한국일보에 게재되었습니다. 신문을 통해 안타까운 소식을 접한 교민들이 서로 돕겠다고 나섰습니다. 코로나로 인하여 모두 어려워하는 상황에서도 힘든 이웃을 돕겠다고 나선 시민들의 소식을 들을 때 따뜻한 구들목에 언 손을 녹이는 듯합니다. 아내가 김 목사의 안타까운 사정을 지인들에게 알리며 기도를 부탁했습니다. 회복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겠다는 약속을 함은 물론 다른 도울 방안이 없을지 물어왔습니다. 다른 지인은 시장 볼 때 보태라며 얼마간 돈을 보내주겠다고 했습니다. 아내는 오늘 저녁 갓 튀긴 닭을 사서 자녀들이 먹을 수 있도록 전해드리면 어떻겠냐고 묻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것..

아내의 60회 생일에

아내의 예순 번째 생일입니다. 생일을 맞아 자녀들이 생일상을 차려주었습니다. 시간을 내어 포트 이리에서 토론토까지 달려와 준 큰딸 내외와 음식을 직접 만들고 준비하여 가족들을 초대해 준 둘째 내외가 참 고맙습니다. 사실 두 자녀와 사위는 병원에서 코로나바이러스 양성 환자들도 돌보고 있는지라 만나기가 쉽지만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큰사위는 전날 코로나바이러스 검사를 받았고 음성으로 확인되어 다소 안심하고 달려왔다고 합니다. 일주일 내내 환자들을 돌보고 먼 길을 달려온 자녀가 있는가 하면 온종일 음식을 만들고 예쁜 케이크와 풍선으로 테이블을 장식한 자녀도 있습니다. 자녀들의 정성 어린 준비와 조촐한 축하가 아내와 저의 마음을 뭉클하게 했습니다.

삶을 나눌 수 있는 이웃이 있음에

새해에 어떤 계획이 있는지 물었습니다. 건강을 위해서 걷겠다는 분이 많았습니다. 감사일기를 꾸준히 쓰겠다는 분도 계셨고 화를 덜 내겠다는 분도 계셨습니다. 책을 많이 읽겠다는 계획을 말하는 분도 계셨고 영어 공부를 다시 시작하겠다는 분도 계셨습니다. 개인적으로 하루에 만 보 걷기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춥거나 덥거나 꾸준히 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는데 일주일이 지난 지금 벌써 사흘씩이나 걷지 못했다고 고백했습니다. 새해 벽두에 세운 자신과의 약속을 일주일도 안 되어 어겨버린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무릎이 아파 걷지를 못했다고 고백하니 어떤 분은 무릎보호대를 차고 걸어보라고 권유해 주었고 어떤 분은 글루코사민을 육 개월가량 먹어보니 좋아지더라는 이야기도 해주었습니다. 이렇듯 삶을 나눌 수 있는 이웃이 있으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