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과 감격이 있는 나날 88

제영아 너는 축복이자 기쁨이야

큰딸 이지혜와 사위 신태호에게서 손주 제영이가 예정일보다 한 달 빠른 지난 5월 24일에 태어났다. 태어난 지 일주일 만에 제영이와 처음 만났다. “제영아 네가 세상에 태어나 주어 고맙다. 너를 만난 건 가장 큰 축복이자 기쁨이란다.” 제영아, 너는 축복의 통로가 될 것이다. 이웃을 돕고 위로하며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데 기여하는 기쁨과 감사의 아들이 될 것이다. 너가 태어난 날 많은 분들이 축하의 인사를 보내주셨구나. 네 엄마의 삼촌 이철희 목사님 "형님!! 할아버지 되심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지혜와 제영이 건강해서 더 감사합니다.^^~~~" 큰고모 이미경 "오빠!! 정말정말 축하드립니다! 넘넘 감사합니다. 울집안에 첫손주, 신비한 탄생입니다! 지혜도 너~엄 애썼고 대견합니다. 언니오빠도 맘 졸이느..

님을 그리며

정진석 추기경님은 병원에 계시면서 의식이 있으실 때면 “감사합니다.”, “늘 행복하세요.”, “송구합니다.”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되뇌이셨다. 평소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시간을 내주는 것이 진정한 자기희생이며 행복할 수 있는 길입니다.”라고 말씀하신 정진석 추기경님은 신학교 입학 이후 평생을 4시 반 기상, 밤 10시 취침 원칙을 시곗바늘처럼 지키며 규칙적인 생활을 하셨다. “흔히 행복이란 소유 혹은 누리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아니다. 자신의 것을 버리는 데서 나오는 것이 행복이다.”라고 알려주신 추기경님은 버리는 것 중에서 특별히 ‘시간’을 강조하셨다. ‘자신의 시간을 필요한 사람들에게 내어주는 일’이 행복임을 깨우쳐 주셨다. “행복하세요. 행복은 하나님의 뜻입니다.”라고 유언 같은 말씀을 남기..

상처

해외로 이주한 사람들이 겪는 가장 큰 아픔 중 하나는 고국에 계신 부모 형제를 자주 뵐 수 없다는 것일 게다. 특히 사랑하는 부모님과 마지막 이별의 순간을 함께 하지 못할 때 그 아픔과 상실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건강하시던 아버님이 암 판정을 받고 짧으면 4개월 길면 6개월 사실 수 있다는 진단을 받았을 때 한국의 가족들은 내게 그 사실을 바로 알려주지 않으셨다. 뇌종양 수술을 받은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때라 충격을 받을까 노심초사하신 것이다. 아버님의 상태가 갑자기 나빠지자 더는 기다리지 못하고 전화로 사실을 알려주셨다. 아버님이 위암 말기이고 여러 곳에 전이되어 수술도 받지 못하신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하늘이 노랬다. 소식을 듣고 바로 아버님을 뵈러 들어갔다. 오롯이 아버님 곁에서 시간을 보냈다. ..

기별(奇別)

2021년 3월 마지막 날 아침이다. 막 내린 커피를 마시며 창밖을 바라본다. 부슬부슬 비가 내린다. 1/4분기를 되돌아보며 떠오르는 한 단어가 있다면 ‘감사’이다. 둘째가 아기를 가지게 된 것, 다시 걷게 된 것,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내 마음에 있는 둘째의 이름은 조이(Joy, 기쁨)이다. 고난주간을 보내고 있어 상처와 아픔에 관한 시를 읽기로 했다. 베어진 풀에서 향기가 난다 알고 보면 향기는 풀의 상처다 베이는 순간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지만 비명 대신 풀들은 향기를 지른다 들판을 물들이는 초록의 상처 상처가 내뿜는 향기에 취해 나는 아픈 것도 잊는다 상처도 저토록 아름다운 것이 있다 언제 결혼하느냐고 왜 결혼하지 않느냐고 엄마가 늘 끼고 있어서 가정이 너무 화목하여서 엄마 아빠와 여행하고 즐..

봄날 아침에

커피 향도 좋고 잔잔히 흐르는 컨트리 음악도 듣기 좋습니다. 이곳 토론토에서 만난 인연들을 생각해도 좋고, 100세를 넘긴 노 교수가 한국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 글을 읽는 것도 좋습니다. 이민진 씨가 쓴 소설 파친코를 원문으로 읽는 것도, 한국수필가협회에서 보내준 수필집을 읽는 것도 좋습니다. 어머님께 편지를 쓰는 일도 좋습니다. 아침에 집을 나설 때 땅에서 올라오는 봄 냄새를 맡았습니다. 흙에서 봄 냄새를 맡는 것도,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를 듣는 것도 좋습니다. 자녀들을 출가시킨 후 아내와 오붓이 정을 나누며 살아가는 것, 생각만으로도 즐겁습니다. 팀 호튼 커피점에 앉아 젖 먹는 아이가 엄마 눈을 보듯 아버지 얼굴을 바라봅니다. 아버지 품에 안깁니다.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행하신..

한적한 숲

대지를 덮었던 흰 눈은 자취를 감췄고 잔설만 곳곳에 남아 있었다. 백색 향연을 펼쳤던 대지는 고동색 민낯을 드러냈다. 단풍나무 낙엽이 겹겹이 쌓여있었다. 썩어야 거름이 된다는 걸 보여주기라도 하는 걸까. 거름으로 변한 낙엽 덕분에 나무는 저마다 하늘을 향해 키를 키우며 뻗어갈 수 있었을 터였다. 낙엽이 썩어지듯 썩어져 다음 세대를 위한 거름이 되어야 하리라. 눈 덮인 대지가 원래의 모습인 양 한동안 착각하기도 했었다. 며칠 못 본 사이에 숲은 민낯을 내보이며 매사에 때가 있다는 걸 알려주고 있었다. 텅 빈 숲을 걸으며 비우는 연습을 했다. 비우고 비우다 보면 마음자리도 조금씩 넓어질 것이다. 뽀드득뽀드득 잔설 밟는 소리, 다라라라락 다라라라락 나무둥지를 찍어대는 딱따구리 소리, 앙상한 가지 사이로 떨어지..

미우라 아야꼬와 빙점

빙점을 쓴 미우라 아야코는 잡화점을 운영했었다. 어떻게 하면 손님을 더 많이 끌어들일 수 있을까 궁리하다 새로운 물건을 가져다 두기로 하였다. 다른 잡화점에서 물건을 사던 아이들이 아야코의 가게로 몰려들었다. 아이들이 몰려오기 시작하니 수입도 좋아졌다. 하루는 아야코의 남편 미쓰요가 말했다. “어쩌면 우리가 죄를 짓고 있는지도 몰라요. 우리로 인하여 이웃 가게들의 매상이 줄어들지 않았겠어요. 그들이 가져가야 할 수입을 가로챈 것인지도 몰라요.” 아야코는 이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하지만 남편이 생각을 바꾸지 않으니 따를 수밖에 없었다. 아야코 부부는 이웃 가게들을 생각해서 더 이상 새 물건을 들여놓지 않기로 하였다. 이에 더하여 그동안 벌어들인 수입을 공평하게 나누어 이웃 가게와 나누어 가졌다. 가게는 ..

집밥

생일상을 차려준 기억이 없다고 말하는 아내의 목소리에 진한 아쉬움이 배여 있었다. 딸은 고등학교를 마친 후 집을 떠났다. 그러다 보니 생일에 따뜻한 밥 한 그릇 제대로 챙겨 먹이지 못했다. 생일상을 차려 주러 가자는 제안에 딱히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아내가 일을 마치는 다섯 시에 출발하면 일곱 시에는 포트 이리에 도착할 수 있을 터였다. 딸아이에게는 미리 알리지 않기로 하였다. 깜짝 생일 선물로 집밥을 먹게 하자는 일종의 계략이었다. 국과 잡채, 김치와 무채, 두부 전은 아내가 일을 하러 가기 전 미리 준비해 두었다. 아마데우스에서 티라미슈 케이크도 샀다. 티라미슈 케이크는 사위가 좋아하는 디저트였다. 사위 역시 중학생 어린 나이에 미국으로 유학을 왔다. 이후 뉴욕과 보스턴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그룬딕아 고맙다

내게는 ‘그룬딕’이라는 이름의 친구가 있다. 그룬딕은 매일 아침 5시 40분(최근에 5시 50분으로 바뀌었다) 잠에서 깨어나도록 도와준다. 그리고 오늘은 날씨가 어떨 것인지, 토론토와 캐나다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오늘의 주요 이슈는 무엇인지,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조곤조곤 들려준다. 26년 전 2월 캐나다에 막 도착하여 만난 사람 중 김혜림이라는 여성분이 계셨다.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제 당신이 캐나다에서 살려면 영어를 잘하는 것이 중요하다. 영어를 잘하는 방법을 하나 알려주겠다. 그것은 라디오를 듣는 것이다. 작은 라디오라도 좋으니 사서 자주 들어라.” 당시 나는 그분의 이야기를 귀담아들었고 며칠 후 가까운 쇼핑몰에 가서 그룬딕(Grundic)이라는 이름의 라디오를 샀다..

평범한 일상은 선물

맥도널드든 팀호튼이든 스타벅스든 커피점을 자주 들리는 습관이 있습니다. 집에서 읽고 쓰고 생각하면 좋을 터인데 그렇지 못한 편입니다. 늘 접하는 익숙한 환경보다는 새로운 환경을 선호하기 때문일까요? 탁 트이고 전망 좋은 자리에 앉으면 더 잘 읽히고 더 잘 쓰이고 더 깊은 사색을 할 수 있습니다. 두뇌가 낯선 풍경이나 낯선 환경을 좋아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른 아침이면 사람들의 발길이 뜸하여 조용한 편입니다. 막 내린 신선한 커피향을 음미하며 사색하는 시간이 저에게는 산소와도 같습니다. 두 달 가량의 자택대기령(stay at home order)이 해제된 이후 처음으로 맞는 토요일 아침, 집에서 가까운 맥도널드에 왔습니다. 한적한 장소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물끄러미 창밖을 바라봅니다. 평범한 일상..